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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 정도전 그가 품었던 민본사상

한 나라의 개국을 이끌었던 왕조의 영웅에서 한 순간에 역적으로 몰리어 참수를 당하고, 그 왕조가 끝날 무렵인 500여년 후에야 다시 신원(伸寃)이 되는, 말 그대로 드라마와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 바로 삼봉 정도전이다. 이 시대에 삼봉의 사상이 필요한 이유는, 그가 품었던 꿈은 백성이 주인이 되는 민본(民本)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려 말의 대표적 신진사대부 세력이었던 삼봉 정도전은 공민왕 때에 유학(儒學) 진흥정책의 일환으로 성균관을 육성할 당시에 대표적인 유학자로서 활약을 하였다. 하지만 공민왕이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되고, 우왕이 즉위하자, 당시 실세였던 이인임 일파가 나라를 쥐락펴락하게 되었고, 결국 정도전은 7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시골에서의 유배 생활 동안 정도전은 민심이 무엇인지에 대해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백성들이 그들의 흙 묻은 옷자락을 털며 한숨처럼 내뱉은 한 마디 한 마디를 모두 가슴에 담은채, 정도전은 진짜로 백성을 위한 나라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 없이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이론적인 민본이 아닌, 백성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진정한 민본사상(民本思想)을 바탕으로 한 이상국가를 꿈꾸게 된다. 그의 민본사상은 다음의 말로 조금이나마 표현이 될 것이다.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고, 민심을 따라서 하늘을 받드는 것이다. 순임금에게 천하를 물려준 것은 요임금이 아닌 민심이었다."


이후 그는 조선 왕조 개국의 일등공신으로 엄청난 활약을 하게 된다. 700여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국민을 위한 행정의 기본 지침으로 불리는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집필한 것을 비롯하여, 과거제를 실시하여 세습을 통한 관직 등용의 불합리를 해소하게 된다. 또한 일부 특권층에 토지가 집중되어 있고, 일반 백성들은 콩 한 포기 심을 땅 조차 부족했던 당시 토지제도의 부조리를 해결하고자 정전제를 실시하고 자영농을 육성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백성이 편안하게 잘 사는, 백성이 주인이 되는 민본(民本)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삼봉 정도전은 요순 시대에 그러했던 것처럼, 왕권과 신권이 조화롭게 융합되어 더 좋은 국가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나라를 꿈꾸었다. 즉, 왕도정치를 전면에 내세우며 조선을 건국한 것이다. 하지만, 조선 개국 이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왕권강화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결국 태종 이방원에 의하여 숙청을 당하게 되고 무려 500년 이라는 세월 동안 역적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다. 그 후 고종 9년에 대원군에 의하여 관직이 회복되고 신원(伸寃)이 된다. 19세기 초 조선 사회의 부조리를 해결하는 데에 정도전의 민본주의 사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 시대는 과연 완전한 민본주의를 이루고 있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통제들과, 현대판 귀족들의 억압 속에서 하루하루를 스스로 위안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삼봉 정도전, 그가 품었던 민본사상은 대원군 시대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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