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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류성룡

징비록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

지난 2017년 겨울, 안동 문화예술의 전당에서는 클래식 음악인들이 전통 의복을 착용한 채로 아름다우면서도 때로는 비장하기도 한 선율을 노래하고 있었다. 바로 경상북도와 안동시가 주최하는 오페라 '아! 징비록'의 공연 현장이었다. 



서애 류성룡과 그의 저서 징비록(懲毖錄)은 이렇게 오페라 뿐만 아니라 KBS에서 대하드라마로도 제작이 된 바 있다. 무려 50회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제작이 될 만큼 그의 삶과 사상 그리고 징비록은 드라마틱하면서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그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다. 


뛰어난 지력으로 재상의 자리에

류성룡은 21세의 나이에 퇴계 이황의 제자가 된다. 퇴계는 류성룡을 하늘이 내린 인재라며 칭찬을 하였다고 한다. 함께 수학했던 학봉 김성일 역시 스승이 유일하게 류성룡만을 칭찬하는 것을 언급하며 서애의 능력을 칭송하였다. 스승 퇴계 이황의 평가에 부응하듯 그는 23세의 나이에 소과에 합격한 이후 그의 능력에 걸맞게 출세를 하게 되었고, 28세가 되어서는 성균관 공조좌랑에, 30세에는 병조좌랑과 이조좌랑이라는 관직에 오른다. 


그가 벼슬을 할 시기에 조선의 정국은 동서붕당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정여립 모반사건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동인은 무너지게 되고 서인이 집권을 하게 된다. 당연히 동인 계열이었던 류성룡 역시 벼슬에서 물러나야 했지만, 선조는 정국을 장악한 서인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류성룡을 우의정으로 등용하게 된다. 그 후 50세가 되던 해에는 좌의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내부의 싸움으로 외부의 적을 놓치다

그렇게 조선 내부에서는 붕당간의 세력다툼이 지속되고 있었고, 당연히 나라의 내실을 다질 수가 없는 환경이 되었다. 결국 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되고 나라는 쑥대밭이 되고 만다. 이 때가 서애 류성룡의 나이 51세인데, 선조는 특명을 내려 그를 영의정의 자리에 앉히게 된다. 그러나 왜란에서의 패배에 대한 책임으로 파직이 되고마는데, 그 이후에 영남지방과 호서 호남지방을 맡는 삼도 도체찰사의 자리를 맏게 된다. 


후회를 미래에 대한 준비로

그는 임진왜란 패전의 경험을 잊지 않고, 전국에서 의병을 모집한다. 또한 훈련도감을 설치하는 등 나라의 국방력 강화를 위해 헌신한다. 그러나 북인 세력의 견제로 인해 다시 파직이 되고, 결국 안동으로 낙향하게 된다. 후에 왕은 그의 관직을 회복시키고 다시 등용하려 7년이나 류성룡을 조정으로 불러들였지만, 류성룡은 그저 고향에 머물며 징비록을 저술하게 된다. 


이제서야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마는 다만 뒷날에 경계로 삼아야 하겠기에 자세하게 적어둔다. -징비록 中-


류성룡은 그의 역작 징비록에서, 나라의 안보는 뒷전으로 미룬채 붕당 싸움에만 전념했던 조선 선비들의 나태함과 탐욕에 대한 경계와, 후대에 다시는 임진왜란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을 담았다. 그리고는 세상을 뜨기 3년 전, 동아시아사에 길이 남을 역작인 징비록을 저술하게 된다. 




역작 징비록

서애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왜란으로 인해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벌어졌던 참상을 낱낱이 고백하고,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의 근본적인 원인을 통쾌하게 분석해내었다. 또한 왜란으로 피폐해진 조선을 재건하기 위한 생산적인 비전을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후대에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반성의 내용들을 담아서 후손들이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징비록은 조선을 너머 중국과 일본에서도 널리 읽혀졌는데, 이 책을 통하여 중국인과 일본인은 조선에 대한 관점을 바꾸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즉, 징비록은 역사에 길이 남을 동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것이다. 


징비록의 교훈을 잊은 민족

서애 류성룡의 시대 이후에도 우리는 호란을 겪게 되고, 일본으로부터 또 다시 침략을 당하게 된다. 또, 해방 후에는 분단의 아픔을 겪게 되고, 불과 5년만에 한국전쟁이라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아무런 걱정이 없이 그저 지내도 되는 것일까. 전쟁이란 이제 먼 과거의 일로 치부해도 되는 것일까. 설령 앞으로 두 번 다시 전쟁은 없다고 해도, 지금 세계화 속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전쟁 중에 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총과 대포를 바로 이 순간도 서로를 향해 쉴 새 없이 쏘아대고 있다.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고 현재를 현명하게 살아가며 미래를 대비해야 함을 7갑년(420년)도 더 지난 때에 깨달은 서애 류성룡의 지혜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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